이정

                                                 



청와대 앞 기자회견.."주인공 아닌 미래세대 서포터 역할 하겠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44·15 총선에서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입춘이다. 이 지긋지긋한 '겨울 공화국'을 끝내는 봄이 와야 한다""대한민국의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기 위해 종로에서 출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종로구에 속한 데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이 가까운 청와대 앞을 회견 장소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이미 출마 선언을 했으며, 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출마 가능성도 남아있는 상태이다.

이 의원은 "이제 문재인 정권을 끝내야 한다. 저는 분열주의자가 아니다. 모두가 두려워 망설일 때 누군가는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저의 종로 출마를 시작으로 문재인 정권을 끝장내는데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당, 모든 정파가 하나로 뭉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 지긋지긋한 권력의 사유화, 국민 편 가르기, 후대의 미래 훔치기 등 좌편향 운동권 집권 세력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에게는 선거밖에 없다""정치인은 선거로 정치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앞장서서 저 좌편향 급진 집권 세력의 장기 집권전략을 부수기 위해 종로에 출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특히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 미래세대들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 공간"이라며 "그 젊은이들의 서포터, 가이드 역할을 하겠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17계단을 거쳐 올라가며 경험한 저의 모든 경륜을 미래세대 정치세력화를 위해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한국당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이 의원은 1995부터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만 출마해왔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그는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순천·곡성에서 처음 당선되며 '지역구도 타파의 선구자'로 기록됐고, 2016년 순천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지난해 1212일 호남을 떠나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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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시장원리


"구조 몰두하게 해달라는 간청..언론 침해 의도 아니었다"
"법 조항에 모호성..국회에서 점검 필요"

이정현 무소속 의원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이균진 기자 = 이정현 무소속 의원은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보도에 개입한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죄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최종 결정에 조건 없이 승복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여전히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가 됐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고 마음이 무겁다. 사과드린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날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 의원은 한국방송공사(KBS)가 정부와 해경의 대처를 비판하는 내용을 보도하자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몰아간다' '10일 후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하라'고 편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의원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언론이나 정치 무대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개진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거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해 불필요한 정쟁을 초래할까 우려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었고, 사실과 어긋난 진실을 밝히자는 것과 재난 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데 몰두하게 해달라는 간청이었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다툴 여지가 없지 않아 3심까지 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방송편성 독립 침해혐의로 32년 만에 처음 처벌받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관련 법 조항에 모호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다툼 여지가 있었고, 보완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저의 경우가 참고가 돼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출처-뉴스1


이제 장지져야죠? 언제할 꺼에요?




썰매가 이정도는 돼야지.gif 미라클 0 4 01.16 14:30


1심 징역형 집유→2심·대법 벌금 1000만원..의원직 유지

이정현 무소속 의원. 2019.10.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방송공사(KBS)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현 무소속 의원(62)이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방송법 제정 32년 만의 첫 유죄 확정판결이다.

벌금형 확정에도 그의 의원직은 유지된다. 국회의원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확정받거나, 선거법 위반 외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6일 방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의원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의원은 세월호 참사 뒤인 2014년 4월 21일과 30일, KBS가 정부와 해경의 대처를 비판하는 보도를 잇따라 하자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몰아간다' '10일 후에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 하라'고 편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그는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방송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방송법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이나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게 하고,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이 의원은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에 정상적 공보활동의 일환으로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청한 것이라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이 의원 행위는 단순 항의 차원이나 의견 제시를 넘어 방송편성에 대한 직접적 간섭"이라며 유죄로 인정해 의원직 상실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아직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는 방송법 위반 처벌조항 적용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관행이란 이름으로 별 경각심 없이 행사돼왔던 정치권력의 언론 간섭이 더 이상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2심도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이 의원 측이 방송법상 '간섭'의 뜻이 불분명하고 단순 의견제시까지 처벌하는 건 기본권 침해라며 낸 위헌심판제청신청은 기각했다.

다만 2심은 이 의원이 이런 행위를 "관행이나 공보활동 범위 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형이 너무 무겁다는 주장은 받아들여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출처-뉴스1



진서 환단고기 -이정기 왕국기록 마이쮸 0 1,012 2017.01.29 11:20

이정기 왕국의 대당항쟁은 국내문헌으로는 환단고기에만 나온다

중국대륙에는 서기 761년부터 817년까지 4대 58년간 당나라와 맞서며

산동반도 일대를 장악했던 독립국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가 세운 평로치청왕국이다.


이정기는 고구려의 유민으로 본명은 회옥이다.

 이정기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중국 정사인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에 수록되어있고

국내 문헌으로는 이정기의 대당항쟁은 유일하게 환단고기에 기록되어있다.


특히 『환단고기』에는 이정기가 대제라는 큰 나라를 세우자

대진국 문황제가 군사를 보내 싸움을 돕게 한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환단고기>'태백일사' 당에 항거한 이정기의 활약 부분

大興四十五年淄靑節度使李正己擧兵拒唐軍帝逾將助





산동성 청주에 있는 지역 박물관인 청주박물관엔 고구려 유민으로 한때 이 지역을 통치했던 이정기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흥45년(단기 3114,781)에 치청절도사 이정기가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

 임금께서 장수를 보내어 싸움을 돕게 하였다.

 이정기는 고구려인으로 평로에서 태어났다.

대흥 22년에 병사들이 군의 통수자 이희일을 쫓아내고 정기를 세웠다.

 이정기가 죽자 아들 납이 아버지를 따르던 무리를 거느렸다.

 대흥 56년에 납이 죽자 아들 사고가 그 자리를 계승하였다.

사고가 죽자 그 집사람들이 발상을 하지 않고

몰래 사람을 보내 밀 땅에서 사도를 맞아들여 받들었다 (단기 3139,806)


고구려 유장 이정기가

중국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大齊, 평로치청)라는 큰 나라를 세우고,

4대 58년간 다스린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나오는데,

 KBS 역사스페셜 ‘중국 속에 또 다른 고구려가있었다, 이정기 왕국(2001.5.16)’에서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사전에서도 다루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조선 중종15년 이맥 찬

 대흥(대진국  3대왕 문황제 흠무의 연호) 45년 (서기 781년임) 치청의 절도사 이정기가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 군사에 항거하니 임금(문황제)께서 장수를 보내어 싸움을 돕게 하셨다. 이정기는 고구려 인인데 평로에서 태어 났다.대흥 22년(단기3091 758) 장수들은 군의 통수자  이희일을 쫓아내고 정기를 세웠다. 이정기가 죽자(단기3114,781) 아들 "납"이 아버지를 따르던 무리를 거느렸다. 대흥  56년(단기 3125,792) 납이 죽자 아들 "사고"가 그 자리를 계승하였다 (단기3125,792) "사고"가 죽자 그의 집안 사람들이 발상을 치르지 않고 몰래 사람을 보내 밀 땅에서 사도를 맞아들여  받들었다. (단기 3139,806)



최남선의 기록은 1947년 국민조선역사 의 딱 한줄 기록이다.그냥 다스렸다정도이다.대당항쟁기록은 없다.

삼국사기기록도 한 줄이다..신라가 토벌하는데 도왔다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