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루아 1-8

소카진 1 656 2006.10.17 12:10
 8.

 소녀는 현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일이 도저히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런 영문도 모르는 곳에서 죄도 없이 죽는다니 어이가 없었다. ‘싫다’고 ‘죽기 싫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울부짖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봉해져서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소녀는 소리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흐느끼는 것은 소녀만이 아니었다. 살 수 있는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는 이 상황에 모두가 절망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죽임을 당한 여자를 제단에서 제거하기 위해 탈을 쓴 사람들이 다가갔다. 그들은 늘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동요 없이 여자의 손을 풀어 제단에서 끌어내렸다. 여자의 몰골은 너무 처참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너무 수분이 빠져나가 말라서인지 말라버린 화초처럼 그녀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툭’하고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머리는 데굴데굴 굴러서 소녀의 앞까지 왔다. 여자들은 나올 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 물체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러나 곧 탈을 쓴 사람들로 하여금 제지당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오직 소녀만이 동요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녀는 맥박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방금 제물이 된 여자의 머리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무서운데, 말라버린 그녀의 눈동자와 자신의 눈이 마주쳐 버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채로 뜨여있는 눈동자에는 이미 말라버려 비쳐 보일 리 없을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 순간 죽음과 마주친 것처럼 온몸에 경련이 일었다. 

 무서웠다. 그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 상황과 장소에서... 그러나 소녀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소녀는 그런 자신이 바보 같아서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눈물만 흘릴 뿐, 약간의 흐느낌도 없었다.

 그런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리샤드... 일이야 어찌되었든 한번 그녀의 목숨을 구한 자였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데... 뭐,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

 그의 눈에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소녀가 비쳐졌다. 어쩐지 안쓰러웠다. 차라리 다른 여자들처럼 나오지도 않는 소리를 쥐어짜며 절규하는 편이 나았다. 그랬다면, 조금쯤 죄악감이 밀려온대도 한두 명이 아니니 외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녀는 미동도,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의 눈물인지 죽은 여자에 대한 연민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쩐지 처음으로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어쩐지 죽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왜지? 이제껏 그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저쪽세계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

 몇 일전 술법의 연마를 핑계 삼아 류카이어를 만나러 갔을 때, 웬 일로 집에 있던 그가 간만에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었다.

  “달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저쪽세계의 인간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이 죽음의 평원이 맨 처음 접점지역이라는 것 같더군... 냄새를 맡고 나타난 녀석들이 있어. 그 때문에 습격 받아 만신창이가 되거나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이 당해버린 인간들을 봐버렸다. 꽤 성가시게 됐어...”

 심각하게 말하는 류카이어를 보다가 그가 내려놓은 짐 꾸러미 속에 비죽이 나온 내용물을 보았다.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장기나 신체 일부는 왜 챙겨온 겁니까? 실험이라도 할 셈입니까? 아니면 카만처럼 먹으려는 겁니까? 어느 쪽이든 간에 악취미겠지만 말이죠.”

 “큭큭... 설마... 내 주제에 실험은 무슨... 혹여 네 녀석이 맘먹고 그쪽 인간들이 발견 되었을 때, 이쪽으로 도주시켰을 경우를 대비한 거다. 뭐, 네 녀석이 아니라도 그쪽 인간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꽤 있어서 말이야...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둥 하면서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리샤드는 그렇게 말하는 류카이어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정말로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당신이 그런 일까지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만...?”

  “뭐, 그렇게 됐지... 그런데 넌 언제까지 그런 놈 밑에 죽치고 있을 거냐. 엔샤가 알면 통곡을 할 거다.”

  “당신이 어머니에 관한 것을 모두 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다.”

  “내 입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대한 예가 아니다.”

 류카이어는 자신의 왼쪽 눈이 있던 자리에 왼손을 슬며시 갖다 대고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눈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 다시 상기되는 것처럼...  리샤드는 그럴 때마다 곪을 데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것 같아서 매번 질문을 삼켰다. 그래서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도 류카이어의 이야기도,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 모두에 대해서도... 그래서 더는 묻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리샤드는 다시 소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스무 명이 조금 안 되는 수였지만 그마저도 줄어 조금씩 소녀의 차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샤드는 이를 악 물었다. 

 ‘정했다면 물러서지 마라.’

 마치 류카이어가 옆에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으니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 뿐... 소녀를 구해 이곳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된다. 그는 류카이어가 말해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일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알고 싶다.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어! 하지만...’

 망설임이 꽉 쥔 주먹으로 전해졌다. 탈을 쓰고 있어 보이지 않을 표정을 들킬까봐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소녀의 앞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지 않았다. 제단의 여자를 마지막으로 소녀의 차례가 되어버릴 순간이었다.

 ‘큭! 어쩔 수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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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도 자작인데 말이죠... 제목앞에 자작이라고 쓰니, 뭔가 다른 사람들은 자작이 아니라는 것 같고...
조금 슬프달까... 그렇습니다...

소설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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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1 소카진  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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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부탁합니다아~

Comments

둘리사마 2006.10.19 19:06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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