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월담 월희 공의 경계 [1]

cley 0 463 2005.04.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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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8월로 접어든 날 밤, 미키야가 사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
「안녕. 변함없이 나른한 얼굴이네, 시키」
  갑작스런 방문자는 현관입구에 서서, 웃는 얼굴로 재미없는 인사를 했다.
「실은 말이지, 여기 오기 전에 사고가 난걸 봤어. 여자애가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
  다른 사람의 집에 찾아오자마자, 미키야는 자연스런 말투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에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실물과 조우할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말야. ───자, 이거. 냉장고」
  현관에서 부츠의 끈을 풀면서, 손에 들고 있던 편의점 비닐봉지를 던지듯 넘겨준다. 안에는 하겐다즈의 스트로베리가 두 개. 녹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란 소리인 것 같다.
  내가 완만한 동작으로 그 속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에, 미키야는 신발을 다 벗고서 문지방을 넘어와 있었다.
  내 집은 맨션의 한 방이다.
  현관에서 1미터도 안되는 복도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침실 겸 거실인 방에 다다른다. 거리낌 없이 방으로 걸어가는 미키야를 흘겨보면서, 나도 내방으로 이동했다.
「시키, 너 오늘도 학교 빠졌지. 성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지만, 출석일수를 채워두지 않으면 진급 못 한다구. 같이 대학에 가자던 약속, 잊은 거야?」
「학교에 관한 일로 내게 지도할 권리, 너에게 있어? 게다가 그런 약속은 기억나지도 않고, 너는 대학을 때려치웠잖아」
  그렇게 말하며 노려보자, 미키야는 할말이 없어져서 약간 고개를 숙였다.
「……우. 권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그런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없지만」
  미키야는 못마땅한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바닥에 앉았다. 이 녀석은 자신이 불리해지면, 직설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기억해낸 일이다.
  미키야는 방의 한가운데에 앉았다. 나는 미키야의 등 뒤에 있는 침대에 앉고, 그대로 몸을 눕혔다. 미키야는 나에게 등을 보이는 상태 그대로다.
  남자치고는 자그마한 그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관찰한다.
  코쿠토 미키야(黑桐幹也)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나와는 고교시절부터 친구였던 것 같다.
  수많은 유행이 차례차례 나타나서 질주하다가 폭주한 끝에 소멸해가는 현대의 학생들 속에서 따분해질 정도로 '학생'이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귀중품이다.
  머리를 염색하거나 기르지도 않는다. 살갗을 태우지도 않았거니와 장신구도 없다. 휴대전화도 없고, 여자와 어울려 다니지도 않는다. 키는 170이 조금 안되는 듯 하며, 얼굴생김새는 좋은 부류에 든다고 생각한다. 온화한 얼굴형은 귀여운 편인데, 검은 테의 안경이 그런 분위기를 한층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고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잘 빼입고 거리를 걷는다면 지나가는 사람 몇 명은 시선을 멈출 정도로, 실은 미소년이 아닐까────
「듣고 있어? 네 어머니하고 만나봤어. 한번은 료우기 본가에 얼굴정도는 내밀어야지. 퇴원한지 두달이 되도록, 연락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몰라. 실감이 안 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만나봤자, 더욱 거리가 생길 뿐이야. 너한테도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는데, 그런 타인하고 이야기가 될 것 같냐?」
「그러면 언제까지고 해결이 안 되잖아. 시키 쪽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평생 이 상태라구. 친자식이 근처에 살고 있는데 얼굴도 볼 수 없다니, 그런 건 좋지 않아」
  꾸짖는 듯한 말투에, 나는 눈썹을 찡그린다.
  좋지 않다니, 뭐가 안 좋다는 걸까. 나와 양친 사이에서 법을 어긴 일은 없다. 단지,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전의 기억을 상실해버린 것뿐이다. 호적상으로도 혈연 상으로도 친자임이 분명하니, 이대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키야는 언제나 사람 본연의 자세를 지켜야 한다며 염려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데도.



  료우기 시키(兩儀 式)는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다.
  우리 학교는 사립이고, 유명한 진학교였다.
  합격자발표 때, 료우기 시키란 이름이 꽤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나는 시키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명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사복도 OK라는 조금 유별난 진학교였기 때문에, 모두 각자의 복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학교안에서의 시키의 모습은 아주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언제나 기모노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간소한 평상복차림으로 서있는 모습은 시키의 부드럽게 쳐진 어깨에 잘 어울려서, 걷고 있는 것만으로 그곳이 무가(武家)저택의 일부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복장뿐만이 아니라 행동에도 불필요한 움직임은 한점도 없고, 수업 중 이외엔 대화다운 말을 입에서 꺼내지 않았다. 시키가 어떤 인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시키 본인의 모습은 이것 이상으로 뛰어났다.
  머리카락은 흑단처럼 고운데, 그것을 귀찮다는 듯 가위로 자르곤 그대로 내버려둔다. 그것이 딱 귀를 가릴 정도의 숏커트가 되는데, 이것이 또 묘하게 어울려서 시키의 성별을 헷갈리는 생도도 많았을 정도다.
  시키를 보는 사람이 남자라면 여성으로, 여자라면 남성으로 잘못 볼 정도의 미인인데, 아름답다기보다는 늠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런 개성들보다, 내가 무엇보다 매료된 것은 시키의 눈이었다. 눈매는 예리한데, 맑고 고요한 그 눈동자와 가느다란 눈썹. 무언가 우리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그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료우기 시키라는 인물의 전부였다.
  그래.
  시키가 그렇게 되기 전 까지는.



「투신」
「에───? 아, 미안, 못 들었어」
「투신자살. 그건 사고가 되는 걸까, 미키야」
  의미없는 중얼거림에, 말없이 있던 미키야는 움찔, 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대로, 지금의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으음, 그건 사고가 틀림없겠지만……그렇군, 확실히 그건 무엇인걸까. 자살인 이상, 그 사람은 죽어버렸지. 하지만 자신의 의지인 이상, 책임 역시 자신만의 것이야. 단,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것은 사고니까───」
「타살도 아니고 사고사도 아니다. 애매하네, 그런 건. 자살이라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키. 죽은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나무라는 것 같지 않은, 온화한 어조. 그런 미키야의 대사는 듣기 전에 예측 할 수 있을 정도로 진저리가 나 있다.
「코쿠토. 나, 너의 일반론이 싫어」
  자연스럽게, 반론에 가시가 돋친다. 하지만 미키야는 기분나빠하는 기색도 없다.
「아아. 정말 오래간만인걸, 그렇게 부르는 건」
「그런가?」
  응, 하고 미키야는 앵무새처럼 끄덕인다.
  그를 부르는 방법은 미키야와 코쿠토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코쿠토라는 발음의 느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의 공백에 생겨난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키야가 기억났다는 듯 손바닥을 쳤다.
「그러고 보니 신기한 일이 있는데, 아자카(鮮花)가 봤대」
「……? 봤다니, 뭘?」
「그러니까, 전의 그거라구. 후죠우 빌딩의 여자.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거 있잖아. 시키도 한번 봤다고 말했었지?」
「───────」
  아아, 생각났다. 분명 3주정도 전부터 시작한, 별거 아닌 괴담이다.
  오피스가(街)에는 후죠우 빌딩이라는 고급맨션이 있고, 밤이 되면 그 상공에서 사람처럼 생긴 형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만이 아니라 아자카에게도 보였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은 진짜인 것 같다.
  교통사고로 2년간 혼수상태였던 이후로, 나는 그런 『원래 있을 수 없는 것』 이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토우코쪽에 이야기해보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인지한다', 즉 뇌와 눈의 인식레벨이 상향된 것뿐인 것 같지만, 나는 그런 구성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후죠우 빌딩의 놈들이라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봤어. 게다가 최근에는 그 주변을 돌아다니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보일지 어떨지는 알 수 없어」
「흐응. 그쪽으론 자주 다니지만, 나는 본적이 없는 걸」
「너는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안 보이는 거야」
  관계없다고 생각해, 라며 미키야는 토라졌다.
  그 행동은 악의가 없고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녀석은 그런 것을 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해도 난다느니, 떨어졌다느니 하는 별 재미없는 현상이 이어진다. 그런 일에 어떤 흥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의문을 입 밖에 내었다.
「미키야. 사람이 하늘을 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미키야는 글쎄, 하며 고개를 한번 수그리더니,
「나는 이유도 떨어지는 이유도 모르겠어. 왜냐면, 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ps.별내용은 없는데 분량이 장난이 아니네요 읽느라 수고하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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