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히알루론산 나트륨 점안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제한한다며 밝힌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오남용 개선'이었다. 건강보험 적용 제외는 일단 답보상태다. ‘인공눈물 가격 인상 논란’으로 번지면서 대중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 그러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1인당 처방받을 수 있는 사용량은 제한될 전망이다.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서다. 실제로 안과의사회 조사에서 일회용 점안제를 사용하는 상위 10%가 전체 사용량의 무려 40%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안과 의사는 "내부 조사 결과 어떤 환자는 혼자 1년에 1000만원 이상 일회용 점안제를 처방받기도 했다"며 "조정이 필요하긴 하다"고 했다. 오남용을 유발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일회용 점안제 소비가 늘어난 시기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공교롭게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일회용 점안제와 관련해 가이드라인, 정책 등 다수의 목소리를 냈을 때와 시기가 겹쳤다.
식약처의 ‘일회용 점안제 한 번 사용 권고’, 소비량 급증으로 이어져
식약처는 2016년부터 일회용 점안제를 무조건 한 번만 사용하도록 강하게 권고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회용 점안제는 뚜껑을 다시 닫을 수 있는 리캡(
Re-cap) 용기가 대다수였고, 용량도 1mL 정도로 많아 '일회용' 점안제지만 다회 사용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식약처는 2016년 1월 10일부터 일회용 점안제 용기나 포장 설명서에 '점안 후 남은 액과 용기는 바로 버린다', '개봉한 후에는 1회만 즉시 사용하고, 남은 여과 용기는 바로 버리도록 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했다. 2017년에는 제품명에
'1회용'이라는 문구를 기재해
'1회'를 강조하도록 권고했다. 식약처에서 발행하는 일회용 점안제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에도 1회만 사용하고 폐기하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래도 여러 번 사용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많자, 2019년부턴 리캡 용기를 규제하려고까지 했다. 새로운 용기 생산 시설을 구축해야 하는 제약사들이 많아,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식약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예 일회용 점안제는 0.5mL를 넘지 못하도록 용량을 제한하는 내용을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식약처 고시)'에 2021년 11월 11일 신설해 버렸다.
문제는 식약처의 이런 노력이 1회용 점안제 오남용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대한안과의사회에서 발행한 '건성안 팩트시트 2023'를 보면, 일회용 히알루론산 나트륨 점안제 처방 환자 수가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갈 때만 특히 급증했다. 식약처가 적극 1회 사용을 권장했을 때다. 안과에서는 약 2배, 비안과에서는 약 3배나 일회용 히알루론산 나트륨 점안제를 처방받은 환자 수가 증가했다. 놀랍게도 그 후에는 환자 수가 늘지 않고 약간 감소한 채 유지됐다. 특히 용량을 줄인 0.5mL 일회용 점안제 처방 건수는 2017년부터 2021년 11월까지 무려 10배 이상 급증했다.
히알루론산 나트륨 점안제 용량별 처방 현황./사진=대한안과학회
일회용 점안제, 리캡된다면 1일 동안 2~3번 재사용은 괜찮아
그러나 일회용 점안제를 꼭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지 않아도 괜찮다. 식약처 권고대로 일회용 점안제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게 금지돼야 할 만큼 위험한 사안이라면, 일회용 점안제 소비량 증가는 오히려 국민의 안건강 측면에서 좋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과 의사들 십중팔구는 일회용 점안제를 하루(24시간)까지는 재사용해도 된다고 봤다. 고려대 안암병원 안과 김동현 교수는 "안과의사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하루까지는 뚜껑을 닫고 다시 사용하는 건 괜찮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센트럴서울안과 김균형 원장은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 나라는 병으로 된 안약 비중이 큰데, 우리나라에선 일회용 사용이 권장되면서 용기 낭비가 상당하다"며 "일회용 점안제도 하루 정도는 몇 번 사용해도 되는데 딱 한 번만 쓰게 되니 더 낭비가 심해졌다"고 했다. 강동경희대병원 안과 김태기 교수도 "원칙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지만, 안전성과 편리성을 모두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하루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2~3회 사용은 괜찮다"고 했다. 안과 의사들의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강북삼성병원 안과 최철영 교수 연구팀이 242명을 대상으로 리캡 가능한 일회용 점안제를 10시간 동안 3회 이상 사용하도록 했다. 이후 병에 남아있는 액체를 배양해 균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약 2%인 단 5개 병에서만 세균 오염이 있었다. 확인된 균은 4개가 음성 포도 상구균, 1개가 그람음성 아시네토박터균종이었다. 김균형 원장은 "접촉으로 오염될 수 있지만, 상재균으로 독한 균이 아닌 데다가 히알루론산은 단백질 성분이며 점안제에 당 성분은 없어 균이 크게 증식되지 않는다"며 "보존제 없이도 중증 질환의 감염 원인이 될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이어 "안약 점안이 서툴거나, 최근 눈 수술을 했거나, 결막염 등 안과 질환으로 점안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실제로 일회용 점안제를 여러 번 사용해서 안질환 문제가 많던 것도 아니었다. 점안제에 세균이 번식해 혹여 이차 감염으로 이어지더라도, 발병 소지가 가장 큰 질환은 각막염이다. 그러나 일회용 점안제를 다회 사용하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각막염 환자 수는 오히려 연평균 0.4%씩 감소하는 추세였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반대로 식약처의 일회용 점안제 1회 사용 권고 이후, 결막염 환자 수는 2017년 약 453만명에서 2019년 약 457만명으로 소폭 늘었다.
▲리캡이 안 되고 ▲용량이 0.5mL 이하로 줄어들면서 오히려 눈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더 많아졌다. 먼저 리캡이 안되는 용기를 억지로 닫아 여러 번 사용하는 환자가 생겼다. 이렇게 재사용하면, 오히려 여러 이물질과 균이 들어갈 가능성이 커져 리캡 용기에 담긴 일회용 점안제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것보다 위생상 훨씬 안 좋다. 또 한 번쓰고 버릴 때, 남는 점안액이 아까워서 0.5mL를 눈 안에 모두 한 번에 넣는 환자도 생겼다. 김동현 교수는 "각막에 너무 많은 점안액을 한 번에 넣으면 독성각막염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과도한 점안액 투여가 각막 상피 세포 회복을 더디게 한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고 했다. 김태기 교수는 "눈에 공간이 많지 않아 눈이 점안액을 머금을 수 있는 양은 많지 않다"며 "눈물에는 인공 눈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유익한 성분이 있는데, 점안액을 많이 넣었다가 오히려 그런 성분들이 씻겨나갈 수 있다"고 했다. 가천대 길병원 안과 백혜정 교수는 "하루 5~6방울 넣는 사람도 있는데, 2방울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한편, 식약처 권고가 일회용 점안제 낭비를 유발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식약처는 "우리 처는 일회용 점안제의 생산을 유도하지는 않았다"며 "일회용 점안제의 안전관리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발간한 것"이라고 했다.
http://n.news.naver.com/article/346/0000066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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